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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1일 1클래식

1일 1클래식 하이든 : 교향곡 101번 D장조 ‘시계’ 2악장 안단테

by 해피구단 2020. 4. 6.

1일 1 클래식 하이든 : 교향곡 101번 D장조 ‘시계’ 2악장 안단테

 

오늘은 「음악가를 알면 클래식이 들린다」라는 책에서 말하는 하이든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포스팅하려 한다.

 

 

프란체 요제프 하이든 Franz Joseph Haydn
1732년-1809년
18세기 고전파의 핵식인물

 

하이든은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국경에 위치한 로우라는 마을의 대장간 집 아들로 태어났다.

 

6살에 마을 교회 합창단에서 미사곡을 불렀고 크라비아와 바이올린도 조금씩 켰다.

이 무렵 하이든은 프랑크라는 사람에게 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8살 때 성 슈테판 성당의 소년 합창단에 입단했고

17살에 해고되어 10년 동안 하이든은 힘든 생활을 했다.

 

29살에 헝가리의 공작 에스테르하지 집안의 전속 음악가로 고용되면서 

30년 동안 그곳에서 일하면서 하이든은 궁정악단을 활용해 많은 교향곡과 현악 4 중주곡 등을 썼다.

 

1790년, 에스테르하지 공작의 집에서 나온 하이든은

영국에서 활약하는 독일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음악 매니저인 잘로몬의 초청을 받아 두 차례에 걸쳐 런던 여행을 하였다.

이 런던 여행은 하이든에게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져다주었다.

첫 번째 런던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22세의 청년 베토벤을 만나 그를 제자로 삼게 된 일과

‘잘로몬 시리 즈’라 불리는 12곡과 오라토리오 <천지창조>가 이때 발표된 명작들이다.

하이든의 작품에는 관현악곡 · 중주곡 · 피아노곡 · 오라토리오 등이 있다.

특히 교향곡이나 현악 4 중주곡의 형식을 완성하여 오늘날에는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하이든의 음악적 특징은 멜로디가 신선하고 순수하며 온화하고 소박할 뿐만 아니라

형식적인 질서와 통일성 또한 있어서 고전적인 전형을 보여 준다.

 

하이든의 타고난 소리 

지금의 빈 소년합창단의 전신인 성 슈테판 성당의 합창단에 들아가 활동할 당시

보이 소프라노 소리가 좋아서 주변에서 카스트라토(거세한 남성 소프라노)로 만들라고 권유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로 카스트라토가 되지는 않았다.

 

하이든의 아내

1760년 28세의 하이든은 미용사의 딸인 '마리아 안나 알로이자 아폴로니아 켈러'라는 여자와 결혼했다.

하이든의 아내는 40년 동안 남편의 속을 썩임으로 음악사상 최악의 악처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이든은 그녀와의 결혼은 일생일대의 실수였다고 말한 바 있다.

3살 연상의 아내는 심한 낭비벽에 음악이라면 질색을 하였다.

하이든의 죽마고우인 요한 트렌클러가 하이든의 아내가 본인 닮은 아기를 낳은 것보다

아기를 못 낳은 것이 장점일 수 있다고 할 정도였다.

하이든의 아버지는 하이든의 2세를 보기 위해 카스트라토를 반대했으나 하이든의 아내가 아이를 낳지 못해

2세를 보기를 원하는 꿈을 이룰 수는 없었다는 말도 있다.

하이든이 갓 작곡한 악보 원고지를 음식 그릇 받침으로 쓸 정도로 대단하였다.

 

하이든의 초상화

지금의 하이든의 초상화를 보면 잘생겨 보인다.

하지만 하이든의 초상화는 그 당시의 우수한 초상화가들의 덕을 톡톡히 봤다.

그는 어릴 적 천연두를 앓아 얼굴에 흉터가 있고, 코 끝에는 항상 습진 비슷한 것이 있었고

아랫입술은 많이 튀어나와있었다고 한다.

영국 화가 조지 댄스가 그의 옆얼굴을 몰래 연필로 스케치한 것이 하이든의 진짜 얼굴에 가장 가까워

현재 귀중한 자료로 대우받고 있다.

 

하이든의 성품

하이든은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대해서는 온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하이든에 관해서는 그렇지 않아

주위 사람들이 아쉬워하자 이를 보고 하이든은

"생각해 보세요. 모차르트는 요람에서부터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 자란 사람이지만 나는

망치소리 나 듣고 자랐으니,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어요"라며 말했다.

모차르트는 바이올리니스트의 아들로 태어났다.

 

현악 4 중주곡을 왕성하게 쓰는 하이든을 두고 철학적 내면성을 표출하기 위하기 위해 실내악 기법을 최고의 수단으로

택하고 있다는 등 의미심장한 해석들이 많았다.

그러나 하이든의 설명은 간단했다

"밤낮 함께 어울려 다니는 현악기 주가 네 명을 동원하기가 제일 쉬웠기 때문이지"라고 했다.

 

연습하는 날  연습 시간이 40분이 지나서 단원들이 모이자 단원들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 단원 여러분, 다른 곡도 아닌 교향곡 101번 <시계>를 연습하는 날만이라도 시간 좀 시켜주십시오" 

 

하이든의 애국심

하이든은 2회에 결처 영국 음악여행을 성공으로 이끌고 국빈에 가까운 대우를 받았다.

하이든은 영국 사람들로부터 헨델도 젊은 시절 영국으로 귀화하였다며 귀화를 권유받았지만

하이든의 대답은 이러했다.

"단 한 가지 없는 것이 있네"

"무엇인데요?"

" 섬나라 영국에는 나의 조국 오스트리아가 없다 그 말이오!"

 

 

교향곡 101번 D장조 ‘시계’ 2악장 안단테


하이든은 150여 곡의 교향곡을 작곡했으나 그중 남아있는 것은 104곡이다. <시계 교향곡>은 하이든의 곡 가운데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곡을 ‘시계’라고 부르게 된 것은 제2악장의 반주가 시계의 바늘이 돌아가는 리듬을 닮은 스타카토 8분 음표의 음형을 나타내는 데에서 유래된 것이다.

 

시계 교향곡의 별명은 19세기에 붙여진 것이다.

이 시대의 교향곡은 순수음악으로 교향곡에 제목을 붙였던 시대가 아니었다.

 

교향곡 101번 D장조 ' 시계' 2악장 안단테를 감상해보세요

 

 

교향곡 101번 D장조 ' 시계' 2악장 안단테